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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걸로, 남들과 함께 하는 것

복지로 2016. 8. 3. 09:54
[칼럼]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걸로, 남들과 함께 하는 것

 

 

류승수(배우)

 

나는 공부에도 운동에도 취미가 없었다. 그 흔한 기술 하나 없었다. 성적은 맨 꼴찌부터 세어야 이름 찾기 쉬울 정도였다. 대신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오락부장을 도맡았다. 어느 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하면 행복한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내린 답이 ‘연기’였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름 세 글자를 알리는 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니저 일을 하고, 학원에서 연기를 가르치면서도 ‘배우’의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몇 년 전, 신인 연기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다들 불면증이나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어쩌면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과 지리멸렬한 현실과의 괴리를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힘든 시절을 거쳤기에 공감이 되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에 신인 연기자들을 몇 명 만나봤는데, 다들 배우의 길을 걷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옆에서 누구 하나 따뜻하게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르치는 일에는 좀 자신 있기도 했다.

 

처음엔 조그만 학원을 빌려 9명 정도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시작했는데, 2년째 하다 보니 규모가 100여 명으로 커졌다. 2014년 1월부터 매달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레디액션’이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강생들 대부분은 대학생이지만 걔 중에는 고등학생과 중년들도 더러 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연기자를 꿈꾼다는 것이다. ‘레디액션’은 연기를 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면 이들의 이야기를 못 들으니까 1시간은 내가 말하고 1시간은 질문을 받는다. 매년 ‘레디액션’ 수강생들의 기수가 생긴다. 작년에 강의를 들었던 1기 친구들이 올해 강의 진행을 도와주는 식이다. 물론, 강의만 듣는다고 실력이 늘진 않는다. 사실, 실력을 키워주려면 일주일에 몇 번 만나서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데 그건 내가 해줄 수가 없다. 중요한 건 배우들의 생각이 바뀌는 거다. 생각이 바뀌면 그때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많은 신인 연기자들이 ‘유명인들과 인맥을 쌓으면 혹시나 출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 옆에서 맴돌기만 하면 결국 주변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게 배우로서 성공의 발판이 된다는 건 큰 착각이다.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 가까운 사람한테 인정받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감독보다는 우선 가족,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점차 대상을 넓히면서 기회를 얻어가는 게 배우의 순리다.

 

당장 성공하려고 하면 ‘배우’는 무척이나 우울한 직업이다. 간혹 신인 연기자들이 하루아침에 벼락 스타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배우를 벤치마킹을 한다면 지금 당장 로또를 사는 게 훨씬 나을 거다. 앞만 보면서 걷는 게 배우로서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강의를 하면서 나 스스로도 초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리고 내가 단 한 명이라도, 정말 힘든 친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한다.

 

앞으로도 ‘레디액션’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 강의가 다 같이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재능 기부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 나 하나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배우들이 참여하면 더욱 좋겠다. 훗날 내가 강의를 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다른 배우들이 함께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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